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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오전 충남 서산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대산 공장에서 정전으로 인해 공장 가동이 멈추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로 인해 생산 공정에 투입된 원료를 태우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일부 공장에서는 커다란 불꽃까지 치솟아 지역 주민과 근로자들이 큰 불안을 느꼈다. 2시간 30분가량 전력이 끊겨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대산 공장 일대가 전면 셧다운 되는 일이 발생했으며, 이는 매우 이례적인 사태로 평가된다. 정식 조사가 필요하지만, 전력 공급사의 차단기 이상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예비전력만 제대로 갖췄어도 최대 2주일에 이르는 공장 올스톱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루 매출 1,000억 원인 두 공장이 이 정도로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 사회 전반의 해이한 기강과 시스템 붕괴다. 지난해 12월 29일 179명이 숨진 전남 무안공항의 제주항공 사고에 이어 지난 2월 1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 화재에 이어 2월 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부산’ 호텔·리조트 공사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6명이 목숨을 잃는 등 3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 이런 비극이 또다시 발생했으니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가뜩이나 비상계엄에 이은 탄핵 정국으로 불안한 국민의 사고 트라우마까지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굳이 1970년 4월 18일 아파트가 무너지며 사망 33명, 부상 40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마포 와우아파트 붕괴, 1993년 1월 7일 사망 28명, 부상 48명의 사상자를 낸 충북 청주 우암상가아파트 붕괴, 1994년 10월 21일 다리가 무너져 사망 32명, 부상 17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성수대교 붕괴, 1995년 6월 29일 건물이 무너져 사망 502명, 부상 937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등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기억조차 하기 싫은 상처로 얼룩져있다.
최근에는 2021년 6월 9일 광주 동구 학동 철거공사장 붕괴 참사(사망 9명, 부상 8명), 2022년 1월 11일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붕괴 사고(사망 6명, 부상 1명), 올해 인천 검단 안단테 아파트 사고까지 3년 연속으로 아파트가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4월 30일 시화MTV 서해안 우회도로 교량 상판 구조물 붕괴로 1명이 숨지고 근로자 5명과 시민 1명 등 6명이 다쳤고, 지난해 8월 22일 경기 부천의 한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해 투숙객 7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러한 모든 사고는 우리 사회가 총체적 안전 불감증에 얼마나 심각한 빠져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다 보니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들을 수밖에 없고 대형 참사 때마다 ‘안전 불감증’과 ‘후진국형 인재(人災)’는 지속적인 반복되는 화두이자 우리 사회의 낯부끄러운 자화상으로 고착화하고 있다. 반복되는 대형 사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재해가 직접적 원인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부실시공과 관리 소홀, 안전 불감증 등 인재(人災) 요인이 대부분이다.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벌어진 참극으로,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서울·세종고속도로 천안~안성 구간 교량 공사는 빔(Beam) 거치 장비인 런처(Launcher │ 크레인)를 이용해 교각에 빔을 올리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세종~포천 상행선 교각에 빔을 모두 올리고 하행선 설치를 위해 런처를 옮기는 과정에서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빔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하중이 한쪽으로 쏠리는 편 하중이 작용하면서 붕괴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사고 당시를 촬영한 영상을 보면 교량을 떠받치던 50m 길이 철 구조물 5개가 마치 엿가락처럼 휘어지다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거더(Girder │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보)’ 설치 작업 후 장비를 하행선으로 옮기기 위해 지상으로 내리는 과정에서 ‘거더(girder)'가 정위치를 이탈해 움직이면서 하중을 이기지 못한 상판 등이 무너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당연히 사고 원인은 철저히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고가 발생한 공사 구간은 현대엔지니어링이 주관사를 맡고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공사를 얼마나 허술하게 했길래 이렇게 어처구니가 없는 사고가 벌어진 건지 말문이 막히고 기가 찰 일이다. 지역의 업체에 하도급을 줬다는데 비용을 줄이려고 공사 능력·자격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곳을 선정한 게 아닌지 의혹도 없지 않다. 전문가들도 “총체적인 부실 공사와 부실 감독 등이 결합한 것이 아니라면 이런 사고는 벌어질 수 없다”라고 지적하고 있어 더욱 의구심이 커진다. 공사 주관사는 지난해 4월에는 전남 무안군 ‘힐스테이트 오룡’ 단지 입주자 사전점검에서 벽면 균열, 바닥 기울어짐, 콘크리트 골조 휨 등 무려 5만 8,000여 건의 하자가 발견돼 큰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실제로 주관사의 산재자 수가 2020년 63명에서 2023년 242명으로 4배가량 증가했다. 회사의 안전관리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傍證)이다. 또한, 지난해 10월 국토교통부 발표에서 하자 판정 건설사 1위에 올라 품질관리에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다만 선입견과 감정적으로 과도한 규제를 남발하는 것은 절대 지양해야만 한다. 예컨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사후 처벌 중심이어서 예방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음도 착안(着眼)해야 한다. 지난해 국내 20대 건설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상자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 첫해인 2022년 대비 오히려 12% 증가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6,000달러의 경제 규모를 갖춘 선진국이지만 안전 인프라는 이에 걸맞지 않게 낮은 수준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안전 인프라는 사회 안정과 국가 발전에 필수적 요소다. 무너진 기본부터 바로잡아야 선진국을 넘어 초일류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후진국형 참사가 발생했는데 구조적인 문제가 없을 리 만무하다. 정부와 수사당국은 구조 설계가 제대로 됐는지, 설계가 잘됐다면 과정대로 작업순서가 잘 이뤄졌는지, 감리나 종합적인 안전관리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등을 철저하고 정밀한 조사를 해야만 한다. 책임도 추상같이 엄중하게 묻고, 유사한 사고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무엇보다 12·3 비상계엄 이후 정치·경제 불확실성은 커지고 국민 불안은 가중하고 있다. 국정 공백이 길어지고 국정 난맥상이 커지면서 경제 상황까지 악화하자 사회 전반의 안전 의식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고를 끝으로 이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가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실효성 있는 안전대책을 원점에서 기본부터 바로 세우고 철통같이 완벽한 무결점 안전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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