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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울 건천동에서 출생했으며 1576년 무과에 급제했다. 이후 권지훈련원 봉사, 발포 만호, 1576년 사복시 주부, 조산만호 겸 녹도둔전사의를 역임했다. 1591년 2월 정읍현감으로 있다가 우의정 겸 이조판서 유성룡의 추천으로 고사리 첨사로 승진하고 이어 절충장군으로 만포 첨사 진도군수를 지냈다.
1591년 2월 12일 전라좌수 수군절도사가 되었고 임진왜란 때 옥포해전을 비롯해 사천해전, 한산도해전, 부산포해전에서 승리해서 조선바다 제해권을 장악하고 1593년 8월 1일 삼도수군통제사에 승진했다. 1597년 2월 26일 파면되어 3월 4일 구속이란 최악의 운명을 맞이했으나 다행이도 4월 1일 특사로 방면되어 권율의 휘하에 예속된 가운데 백의종군했다. 8월 3일 남해연안을 순찰하던 중에 진주 운곡에서 통제사 복직 교서를 받았다.
1598년 8월 15일 명량해전에서 왜적을 대파하고 11월 18일 왜적이 철수하자 노량에서 왜적을 전멸 시킨 후 적의 유탄에 순국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순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사실은 없다(김영환, 「이순신의 해전과 호남인의 애국정신 -애국인사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한국정치정보학회, 2004).
필자는 이번 칼럼에서 이순신의 위대한 업적과 생애를 살펴보고 그가 추구하고자 하였던 상무정신이 무엇인지를 세세히 검토하여 지금 직면하고 있는 한반도의 정체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그는 임진왜란 당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23전 23승의 무패신화를 기록했으며 투철한 구국심으로 국가를 지켜냈다. 임진왜란은 조선수군에 의해 승리한 전쟁이다. 당대 수군의 승리는 이순신의 지휘력, 통솔력, 관찰력 등의 자질과 제장들의 충성심과 구국심 그리고 이러한 지휘관들을 믿고 따른 일당백의 무명용사들이 상무정신을 발휘하였기에 가능했다.
이순신은 부하장수들에게 무예를 통해 상무정신을 기르게 하고 심신을 단련을 하게 했다. 특히 이순신은 부하들에게 직접 궁술을 지도했다. “난중일기”와 “이충무공전서”에 기록이 보인다.
그는 언제나 공무를 마친 후에 정신통일을 위해 활터에 가서 활을 쏘았다. 이를 통해 그는 마음을 다스려 전쟁에서도 상무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부하장수들과 병사들에게도 그가 얻은 상무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무예를 수행했으며 나아가 이는 삼도수군을 결속시키는 장이 됐다.
그는 부하장수들과 의논을 할 때도 활을 쏘았고 국가의 안위에 대한 걱정 앞에서는 검을 보며 마음을 닦았다. 그는 마음을 통일시키지 못하면 과녁을 맞힐 수가 없기에 호흡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쏘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줄을 선 궁사들이 차례로 쏘아 과녁을 맞히면 지화자 노래를 부르면서 격려하고 축하해 주었다.
이렇듯 상무정신의 교육은 무예 궁술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또한 그는 죽음 앞에서도 냉정했다. 그가 무예 궁술을 통해 신체지의 평상심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싸움이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前方急 愼勿言我死)." 그는 부하들에게 전장에서 자신감을 주기 이러한 명언도 남긴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산다(必生卽死 死必卽生).” 그는 지도력을 통하여 부하들의 가슴에 상무정신을 깊이 심어 주었다.
그렇다면 이순신은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불세출의 영웅이 되었는가!
첫째, 이순신은 서당에 다니면서 통감, 대학 등 어려운 서적을 읽고 자구의 해석만 얽매이지 않고 대의에 통달하도록 유의했다. 둘째, 무사훈련에도 전념했는데 특히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궁술 수행을 절차탁마했다. 즉 무예 수행에 있어서 제반양상은 이순신을 능가하는 무사가 없었다.
셋째, 이순신은 약 10년 간 무과시험을 위해 준비했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 처가의 장인어른이 큰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장인어른의 제사 지낸 일은 항상 “난중일기”에 기록되어있다. 이 과정 속에서 이순신은 ‘문, 무 중에 어느 한쪽이 우선 되어서는 안 되며 이치와 실천이 완성된 사람이야 비로소 훌륭한 인간성을 가지게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특히 이순신은 선조(1552~1608)의 정치권력에 의하여 백의종군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망보다도 오르지 국가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애국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순신의 상무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즉 상무정신은 무예에서 나온다. 이는 무예수행에 있어 수행자들에게 신체의 마음가짐은 대단히 강조된다. 무예란 무를 배우는 수행자들이 수행을 통해 그들의 도덕성을 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충무공 이순신은 문, 무뿐만 아니라, 지, 덕, 예, 효 등 모든 부분에 출중한 팔방미인이었다. 그는 오늘날로 표현 한다면 지, 덕, 체를 갖춘 인물이자 리더십(Leadership)까지 소유한 인물이었다. 현시대는 이순신과 같은 지도자가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육군 장성과 부인 갑질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이는 군입대 기피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충은 오르지 국가와 국민에게 있다. 반드시 충은 절대 권력으로 사용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과거 임진왜란 당시 우리의 민족혼을 창출했던 선조들의 상무정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를 다시 찾기 위해서 진정한 국가의 상무정신을 함양 시켜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은 장성들과 병사들에게 진정한 상무정신이 무엇인가를 일깨우고 국가관과 민족혼을 심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송일훈 박사 (동아시아 무예전쟁사·문화교류정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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