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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박사 최무웅(건국대학교 명예교수) |
지구의 나이는 46억년이며 2억년동안은 산소가 없어 지구생태환경이 존재하지 못했었다. 이후 O2가 존재하기 시작하여 왕성한 생태계를 형성했으며, 지구의 에너지활동 즉 지각운동으로 지표면이 이합집산을 계속해 왔다.
그런 증거는 지구의 지형, 지질, 화산폭발, 횡압력에 의한 대륙형성 등과 태양과의 에너지관계로 지구가 크게 영향을 받아 기후변화는 생명체들의 탄생 성장 멸종을 거듭한 증거는 화석에 그 역사가 고스라니 남아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환태평양 화산대 혹은 환태평양 조산대라고 하는 지구의 에너지활동으로 지구는 상상을 초월하는 변동과 변화를 했다.
이런 에너지관계로 수많은 기후변화 즉 빙하기와 간빙기가 주기적으로 활동되었으며 현재 극지방의 빙하가 그 증거이다. 물론 빙기가 4번만은 아니다. 수없이 작은 빙하기가 국지적으로 있어왔다.
그러한 활동에 의해 생명체들이 이동 즉 대이동이 해 뜨는 동 쪽으로, 동 쪽으로 이동이 최초의 인구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구상에 인류가 태어난 것은 약 10만년 전이라는 것은 지표면 지층의 화석에서 인류의 화석이 그 증거이다.
아프리카에서 아세아로 인구이동은 약 6만년 걸쳤다는 것은 이온이 좋아 정주하는 기간이 길어서 그러했으며 기온이 저온인 지역 사람은 해가 있는 곳 따듯한 곳을 찾아 가기 위해 추위에서 벗어나려고 빠르게 활동했다 말하고 싶다.
2017년 북국지역 국가인 노르웨이에서 과학자들이 북극여우가 3500km를 여행을 하는 실험을 실시하고 너무나 깜짝 놀랬다. 76일 만에 완주한 여우는 건강하였다. 여우는 하루에 평균 45km씩 걸어서 76일 만에 캐나다에 도착하였다.
식사는 북극흰곰이 물개를 사냥해 먹고 남은 것을 먹고 건강하게 도착했다는 것은 대단한 실험이다. 아프리카 사람이 아시아에 오는데 6만년이나 걸렸다. 그 이유는 기후가 좋아서하게 되면서 수확기를 기다려야 하기에 이동이 대단이 늦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극여우는 해가 뜨는 곳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갔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과거 몽고반점(蒙古斑點) 있는 민족이 여우를 본 따 일찍 도착하니 역시 기온이 낮아 더 따뜻한 곳으로 이동을 시작하여 남미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었지만 영국,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인이 침략하면서 더욱 인수는 감소하였다.
캐나다 북부에 정주하는 여러 언어를 쓰는 First Nations(原住民)은 따뜻한 기후지역을 찾아 일부는 남미로 이동했다. 그러하지만 캐나다 북부원주민은 디양한 언어와 생할습관이 서로 다른 蒙古斑點 사람들이 정부와 협상조약을 하여 그들의 땅을 회복하고 생활하고 있다.
아시아 북극지방에서 몽고반점인 들은 해뜨는 쪽을 향해 짐승을 이용해 추위를 극복하고자 속도를 내어 이동을 했던 것을 북극 여우가 76일 만에 캐나다에 도착한 것과 같은, 아니 그보다 더 빠른 대이동이 있었을 것으로 예측하는 것은 북극 여우의 이동실험이 증명한 것이다.
또 하나는 원주민의 역사에서 보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기위해 당시의 옷인 짐승가죽과 물물교환을 하기 위해 자신들의 고향으로 가서 물물교환을 한 증거가 있으며 때로는 기습적 기후변동에 의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는 기록이 있는 증거가 아시안인 즉 몽고반점인이 그 증거이며 그 기록은 BC 1000전부터이었다고 한다.
이런 관계로 기후가 온난한 지역으로 일부는 이동하고 상업을 하는 원주민은 캐나다북쪽 유콘 알버타, 샤스카춘, 위니펙, 토로도, 유번드랜드 등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인구가 정주했다는 기록이며 현재의 북부내육지방은 蒙古斑點人들이 부족을 이루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아시아의 몽고반점 DNA 사람들이 해가 뜨는 동쪽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빙하지역을 짐승들을 이용하여 얼음 썰매를 끌게 하여 인구 대이동이 현재 북극여우 보다 더 빠른 이동이었다. 방하기가 4번 중 가장 최근 지질시대 빙하기에 인구이동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캐나다 북부에 분포한 원주민의 생활 방식과 언어, 문화, 특징이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은 퍼스트 네이션으로 통합되기 전에는 각 지역를 영토로 하는 국가였다.
그 증거는 유럽인이 침략하여 전쟁을 하고 그들과 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몽고반점 인들이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주인이며 주권국가였다는 것이 증거이다. 남미로 해안을 통하는 길과 내륙 길로 내려가 보니 자신들의 조상이 출발해 살았던 기후는 남극빙하지역 현재의 칠레의 최남단이라서 다시 유턴하여 침략자들을 피해 도시국가를 건설한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마츄 핏츄이다.
스페인, 포르투갈인 등이 침략하여 항복을 받고 노예로 이용하며 혼혈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럽인들이 앞 다투어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의 당시문화는 유럽보다 새로운 도시국가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배한 원주민 국가를 승리자들이 점령하여 그들을 인정하지 않고자 불가사의한 문화라고 선전한 것이 승자들이 한 결과이다.
그후 세계 제1차 2차대전시 영국, 프랑스, 스페인, 터키, 포르투갈 군대와 합류하여 원주민이 전생에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 외는 국가의 인프라 설치에 그들의 노동력이 크게 기여했다. 원주민 국가 등을 인정하고 함께 가는 정책의 국가는 캐나다 뿐이다. First Nations 모든 행사에 총리보다 먼저 스피지 하며, 도시개발 등에도 그들의 국가 토지를 인정하여 그들로부터 허가를 받아 SOC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캐나다는 원주민 국가를 인정하고 조약을 맺었기에 그들의 국가소유의 토지 문화 예술 언어 도든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BC 1000년에서 BC 500년 까지 현재 캐나다 전역에 무역 경로를 정립하고 설립했다. 그러므로 확실하게 원주민 몽고반점DNA를 First Nations로 정의했다.
이학박사 최무웅 건국대학교명예교수, 땅물빛바람연구소 대표, 세계타임즈 고문, 한국갈등조정학회 회장 mw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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