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상무 혼을 부르다. (2)

조원익 기자 / 기사승인 : 2017-08-31 11: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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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타임즈
일본의 대외팽창사(對外膨脹史)에서는 언제나 그들은 한반도를 항상 팽창의 제물로 삼아왔다. 이는 고려중기 이후 왜구의 침입을 시작으로 조선중기의 임진왜란 그리고 근대의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비단 지난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장 최근에는 2017년 4월 21일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가 공물 봉납과 '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를 참배하는 모임 소속'의 각 정당 국회의원과 현직 각료 (장관) 90여 명 등이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를 참배했다. 일본 국수주의 제1의 성지인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는 태평양전쟁 전범들의 위폐가 봉안되어 있는 곳이다.


 일본의 우경화 세력들은 평화헌법 9조의 개정을 통해 ‘자위대’를 국내외적으로 공인받아 대외적으로 군사력을 발산하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피폭 70년을 맞은 오늘날 전범국으로서의 과오는 잊은 채 핵무장의 가능성마저 열어두고 있는 실정이다. 광복 70년이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날 일본제국주의의 암담한 기억을 잊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여기에 일본 NHK 기자가 문 대통령에 한·일 관계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며 과거사에 대한 질문을 했다. 100일 취임 날 일본 NHK 기자가 위안부와 강제 징용문제에 대해 질문해 그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답변에 지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국가의 안위가 무너지면 오늘 우리 자신도 존재할 수 없다. 과거 우리는 국가의 안위만을 위해 자신을 바친 한 영웅을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그가 바로 충무공 이순신이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오르지 국가 안위만 걱정했다. 또한 그는 전장에서도 결코 왜적에게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또 문.무를 겸비한 무장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있었기에 국가와 민족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이순신의 명성은 각국의 해전사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임진왜란의 전쟁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버린 한산대첩과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난 해 12척으로 133척의 왜군함대를 맞아 31척을 격파해 왜군의 서진을 막은 명량해전의 전술과 전략 등은 오늘날에도 해전사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순신은 국가를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구해낸 세계적인 위인으로 존경받고 있으며 그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거북선(龜船)은 미국 워싱턴의 전쟁기념관(War Memorial Museum), 영국 해군사관학교박물관(Maritime Museum), 중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 세계 각지의 역사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특히 이순신이 살아온 인생사를 보면 파란만장(波瀾萬丈)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문.무의 조화로운 함양을 위해 학문과 무예의 수양에 심혈을 기울이었다. 그는 서당에 다니면서 통감, 대학 등 어려운 서적을 읽으며 자구의 해석만 얽매이지 않고 대의에 통달하도록 유의했다. 또한 무사훈련에도 전념했다. 특히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궁술 수련을 절차탁마했으며 무예 수행에 있어서 제반 양상은 이순신을 능가하는 무사가 없었다. 이러한 수양과정을 거쳐, 그는 약 10년 간 무과시험을 준비한다.

 
 그러나 이순신은 첫 무과시험에 탈락하여 좌절의 쓴 맛을 보게 된다. 이때 무과 시험을 구경한 사람들의 이순신에 대한 평이 전해진다. 이들은 ‘말에 떨어진 이순신은 다리가 부려져 있는 가운데에서도 평상심을 유지해 침작하게 버드나무 껍질로 다리를 싸매고 무과 시험에 마지막 까지 응시하는 모습을 보고 여러 사람들은 그의 이런 모습에 감탄을 하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4년 후에 무과시험에 재도전해 4등으로 합격하는데 이때가 그의 나이 32세였다. 그때 당시 평균수명으로 본다면 지금으로 말하면 50세가 넘는 나이다.


 이후 그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세계 4대 해전 중 가장 높게 평가받고 있는 ‘한산대첩’이다. 여기서 그는 당시 독특한 병법을 창안하여 임진왜란의 판도를 조선으로 가져오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순신이 전장에서의 깊은 고뇌를 통해 만든 병법이 바로 그 유명한 학익진 진법이다. “난중일기”에 그가 이 병법을 구사하기까지 얼마나 고뇌했는지 꿈속에 나라를 걱정하고 활터에서 활의 실을 과녁 쏘는 순간 까지 고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해전 학익진 진법은 이순신이 무예 궁술 수련을 통해 깨우치는 과정 속에서 터득하여 창안했다. 여기서 그는 몇 척의 판옥선으로 왜군을 공격하면서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한 뒤 학익진을 쳐 일제히 총통을 발사하는 등 맹렬한 공격을 가하여 층각선 7척, 대선 28척, 중선 17척, 소선 7척을 격파했다. 명나라의 신종황제((神宗皇帝, 1563~1620)는 이순신은 조선의 장수가 아닌 나의 군대(명나라)를 지휘할 장수라고 극찬을 하며 조선의 선조에게 이순신과 같은 신하를 둔 것을 하늘에 감사하라는 내용의 칙서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공에도 불구하고 선조와 서인들에 의해 죄인 아닌 죄인 신세가 되어 옥살이를 겪는다. 그러나 옥중에서도 그는 오로지 국가의 안위를 걱정했으며 늙은 노모 걱정에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이후 그는 생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긴다. 죽음을 앞에 둔 최후의 순간까지 국가의 안위만 걱정하는 정신이야 말로 진정한 상무정신인 것이다. 상무정신이란 본디 무예를 숭상함의 뜻이지만 그보다 원천 것은 국가의 충성이다. 이러한 숭고한 정신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우리는 그를 성웅 이순신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과거 상무정신이 무엇인지 일깨워진 충무공 이순신 그 정신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하지만 현재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민국은 받고 있다. 지난달 북한은 4일, 2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탄도미사일 발사와 지난 29일 일본 상공을 통과한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를 포함한 행태를 규탄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아무런 대책방안이 없다. 미국에 의존하는 것보다 우리 스스로 자아적 진단이 필요하고 대책방안이 있어야 하며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와 국민은 상무정신의 자주적 방위태세를 지속 향상시키고 강화해 나가야 할 때는 분명하다.  송일훈 박사 (동아시아 무예전쟁사·문화교류정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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