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오 케" 오늘의 연재 (38) “어머, 미쳤어, 미쳤어!”

이현진 기자 / 기사승인 : 2025-02-26 10: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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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없는 곳에 길을 만들다

그런데 바로 그 스탠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오늘, 우리 사무실로 나오지 않겠어요?” 나는 이유도 묻지 않고대답했다.
“가겠어요.”
어차피 일자리를 위해 만날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직업소개소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써리의 할머니 집은 떨어졌으니 다른 곳으로 면접 보러 가라는 말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다.
케케묵은 서류들과 팩스, 전화기밖에 없는 조그마한 사무실에는여느 때처럼 필리핀 아가씨들 서너 명이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손에 이력서를 들고 필리핀 말로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1시간 가량 지나자 내 차례가 왔다. 스탠은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그 할머니가 당신하고 살고 싶대요.”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한국말이튀어나왔다.
“어머, 미쳤어, 미쳤어.”
기대하지 않은 일이 뜻밖으로 성사되자 먼저 걱정부터 밀려왔다.
역시 가장 걸리는 것은 내 보잘것 없는 음식 솜씨였다. 한국인 부잣집에서처럼 우스운 꼴로 다시 쫓겨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그런한편으로 끝도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스탠이 보든 말든 나는 그냥 막 웃었다.
‘쫓겨날 때 쫓겨나더라도 일단 부딪쳐 보자. 그 덕분에 인상 좋은할머니와 샤론, 그리고 짐을 다시 한 번 보는 거다.’ 그런 가벼운 마음을 가지려 애를 썼다. 스탠이 말했다.
“내일부터 당장 가서 일을 해요.”
“그럴께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는 메트로타운에 있는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동안 나를 가족처럼 돌봐 준김태식 씨네 세 딸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 막내에게는 동물 인형을,둘째에게는 바비 인형을, 맏딸에게 예쁜 공책을 각각 골랐다.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넉넉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내일부터 써리의 할머니 집에서 일하기로했어요.”
“그렇게 빨리? 잘됐네요.”
그들은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고 염려해 주었다. 김씨 아내로부터검은색 작은 가방 하나를 빌려 속옷과 일하면서 입을 옷 몇 벌, 그리고 간단한 소지품을 챙겼다.
여기저기 옮겨 다닐 때마다 나의 분신처럼 따라다녔던 이민 가방2개는 그 집에 그냥 두기로 했다. 언젠가 쫓겨나면 다시 옮겨 와야할 것이니까 모든 것을 다 가져갈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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